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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성과 역사성의 씨알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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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도엽 작성일16-07-19 01:08 조회861회 댓글0건

본문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에는, 글들을 보면, 항상 초월성과 역사성, 신성과 인간성이 공존한다. 이 두
그루의 큰나무가 얽혀있는 게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 선생님의 글도 영적인
부분과 정치비판적인 부분이 혼합되어있다. 이 두가지의 성질이 씨알 사상에 어떻게 연관되어있을
까? 씨알은 영원의 총결산이며, 모든 형상의 어머니라고 적혀있다. 결국 과거의 모든 것과 미래
의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질로도 구성되어있다는 점과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
는다는 점에서 씨알은 역사적 개념이다. 하지만 씨알은 또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발아해서
잎과 줄기와 꽃으로 성장할 수 있고, 결국 열매를 맺어 영적 가능성을 가진 또다른 씨알들을 낳을
수 있다. 여기에서 씨알 또한 역사적인 면(물질적인 면, 육적인 면)과 영적인 면(초월적인 면)을 동
시에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씨알은 역사 속에서 숨쉬고 작용하는 영의 알같은
것이다. 이 씨알들은 총합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성장하며 나아간다. 초월성과 역사성이라는 양면
을 가지는 동전같이 굴러간다. 이 동전을 굴리는 사람은 하나님이다. 굴리기 시작한 것도 그 분이
며, 끝까지 굴릴 분도, 정확히 말하자면 끝도 없이 굴릴 분도 그 분이다. 사실 굴리기를 시작한 적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떠난 분이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님은 함석헌 저작집 21권 276쪽에서 '성경은 하나님 자리에서 보면 진보도 발전도 없어
요. 영혼은 본래 완전한 것으로, 시간, 공간이 없는 차원이에요. 그 이상의 말로 할 수가 없는 거니
까.' 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성경은 씨알들의 영적 성장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영사(靈史)에 발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모든 것이 계획되어있다는 것이 아닐
까. 모든 것이 뜻되어있고, 이 뜻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말하는 '뜻'은 아닐까. 함석헌 선생님
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뜻'은 '의지'로서의 의미와 '의미'로서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라
고 말한다. 그렇다면 초월성과 역사성의 양면을 가지는 동전은 뜻되어진 길을, 의지로서 의미로
서 발전을 향해 굴러가는 게 아닐까. 아니면 발전이란 것은 상대성이 있을 때 성립할 수 있는 개념
이므로 절대성의 하나님 자리에서는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말일까. 함석헌 선생님에 따르면 지금까
지의 수백억년 우주의 역사와 수만년 인류의 영사는 분명 하나님의 뜻일 건데, 여기에 발전이 없었
다면 우리는 원을 도는 것으로 하나님께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함석헌 선생님은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했는데, 마치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이
걸 위에서 보면 원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는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자리에서 보면 진보도 발전도 없다.'고 하셨나. 그래, 씨알은 하나님이 원을 그리며 굴리고 있는 동
전인지도 모른다. 이 영의 원소가 요한복음의 '태초의 말씀(로고스)'대로 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
에 참 좋은지도 모른다. 영이 육속에 들어가 활동하기 때문에, 영이 육속에서 조금씩 고개를 내밀어
나오고 있는 것이 역사일 뿐 영자체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수만년간의 인류사에
서 영자체는 완전하며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경에는 발전이 없는가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 영이라는 개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둘은 같은 것인가,
별개의 것인가. 함석헌 선생님은 요한복음에서의 로고스와 하나님은 별개라고 말한다. 로고스는 로
고스대로 세상에 작용하며,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계신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영이 육속에서 발
현되는 동안 하나님의 역할은 없다는 것일까. 하나님은 로고스라는 숨을 우주에 불어넣어 시작만
하신 뒤 그 뒤에는 바라보시기만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육속에 들어있는 이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
과 별개인가. 그래서 영이 육에게 탄압을 받는, 역사속에서의 고난이라는 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는 발전도 진보도 불러오지 않는 건가. 여기서 나는 영이란 것은 하나님이 이 물질의 세상, 육의 세
상에 불어넣은 숨이나 심어놓은 씨앗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속에서의 고난이란 것도 그
씨앗들을 죽이려하는 시도라기보다 육속으로 파고들어가게 하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영은 사라지
거나 해체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의 원소로서, 알갱이로서 씨알은 죽지 않는다. 영의 알갱이
로서 씨알이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전체의 영인 하나님이 있는 것은, 마치 광자가 있어 빛이 개
개의 입자로도 파악되지만 파동으로서 전체의 빛이 비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빛은 입자인 동시
에 파동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개개의 씨알인 동시에 씨알의 총합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은 말씀(로고스)이며 빛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
경에는 발전도 진보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경에는 진보가 없다.'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초월성(영)과 역사성(육)의 관
계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위 명제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한 이유는 네가지였다. 첫째는
인류사의 모든 것이 뜻되어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하나님은 절대성의 자리에서 상대성의 인류사
를 보시기에 상대성 위에 성립될 수 있는 진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셋째로, 원래부
터 있던 영이 육속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인류사이고 영자체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영인 하나님 입장에서 
성경에는 진보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인 영이 영의 알갱이로 각 씨알들 속에 심어져있어
영과 육과 하나님은 결국 하나로 작용하므로 하나님 자체에 발전이 없는 이상 성경에도 발전이 없
다는 것이었다. 씨알 사상은 이 영(초월성)과 육(역사성)의 상호작용하는 것에 관한 사상이라고 생
각된다. 육을 버리고 영만을 위해 살자는 것이 아니라 영육을 씨알로서 하나인 것으로 파악하여 하
나님의 뜻인 고난으로 운동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난의 의미는, 고난을 통해 결국은 영이 육속에서
고개를 내밀며 좀 더 지배적이 된다는 데 있다. 앞에서 말했던,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경에는 발전
도 진보도 없다.'는 명제가 이제 우리 씨알들에게 말하는 것은, 고난의 우리 역사를 잊지 말고 세계
위의 하나님을 잊지 말며 우리 속의 믿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사의 하수구였던 이 수
난의 여왕이 다가오는 미래에 죽고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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