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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바보새 씨알학당 -제3강 함석헌의 시 ‘수평선 너머’/김조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보새 작성일17-08-03 22:21 조회299회 댓글0건

본문

제3기 바보새 씨알학당 <한신대학> 



주제; 함석헌의 시를 통해 본 씨알사상
기간; 2011년 11월 1일(화), 12월 7일(수) 4-6시
장소; 한신대학교 오산 캠퍼스 60주년기념관 국제강의실(18517)
강사; 씨알사상연구원(김경재, 김조년, 김성수, 최정윤



함석헌의 시 ‘수평선 너머’

 

김 조 년

바보새 씨알학당 한신대 강의

 

함석헌의 시를 읽는 것은 쉽지가 않다. 매우 힘이 든다. 때로는 괴롭다. 읽기를 그만두고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왜 그러할까? 그러나 그것이 그의 시가 주는 특징이면서 매력이다. 그것은 그가 씨를 쓰는 자세를 다르게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단 우리는 조선시대의 문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시 쓰는 자세를 빌어 그가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7월 8일 기록에 이렇게 돼 있다.

내 말하노니 갓난아이에게 물어보라. 余曰 聞之赤子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떠할까? 赤子初生所感何情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 어둡고 막힌 곳에서 兒胞居胎處 蒙明沌塞

묶여 있다가 纏(전)糾逼窄

하루아침에 훤히 넓은 곳으로 나와 一朝迸出寥(요)廓

손발을 펴 움직이고 마음은 시원하게 넓어지니 展手伸脚 心境空豁(활)

어찌 참된 목소리를 내어 감정을 토설치 않으리오 如何不發出眞聲 盡情一洩(설)哉

의당 영아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본받으면 故當法嬰兒聲

가짜를 지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無假做(주)(기세춘의 번역)

 

다시 한 번 박지원의 문장을 인용하여 본다. 그는 조선 후기 문체창신운동을 제기한 사람으로,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그에게 가장 좋은 문장을 쓴 사람은 중국의 장자다. 장자는 우언과 사실과 비유와 틀을 벗어난 글을 자유자재로 썼다. 그의 글에는 역경의 글투와 춘추의 글투가 그대로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역경과 춘추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글을 써서 교훈을 진술한 것으로서立言說敎

신명의 뜻을 통하고 사물의 법칙을 꿰뚫은 것으로는通神明之故 窮事物之則者

역경과 춘추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莫尙乎易春秋

역경은 은미하고 춘추는 현저하다.易微而春秋顯

은미함은 진리를 담론하는 것으로 그것이 유행하여 우언이 되고微主談理 流而爲寓言

현저함은 사건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것이 변하여 외전이 된다.顯主記事 變而爲外傳

저서의 방법은 이러한 두 가지 길밖에 없다.著書家有此二塗

(熱河日記 序: 기세춘 역)

이런 것들에 의하면 알리면서, 드러내면서 숨기는 것이요, 숨김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이 역경과 춘추의 글 쓰는 비법이다. 그것을 우리는 함석헌의 시에서, 아니 다른 글에서도 발견한다. 특히 그의 시는 드러냄과 감춤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말라혀는 것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또 이런 시도 있다. 1964년 1월 26일 치 조선일보에 아버지에 의하여 독살된 어린 아이가 쓴 글이 실렸다. 그것은 이렇다. 

아버지가 오늘도
식빵을 사왔네
엄마는 왜 안 오나
보고 싶네 아가가
자꾸만 울어서 

집을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가난한 아버지가 언제나처럼 식빵 몇 개를 사다 준 모양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그 식빵 속에 독약을 찔러 넣었다. 그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 온 그 식빵을 먹고는 죽었다. 그 아버지도 뒷산에 올라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것은 시입니다. 사람의 혼을 뒤흔드는 놀라운 시입니다. 어린 혼이 기아의 채찍에 맞아서 찢어지게 우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마음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단테의 시를 듣고는 가만 있을 수 있어도 이것을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 뭐랍니까? ‘엄마는 왜 안 오나 보고 싶네.’ 이 애는 배가 주린 것만 아니라 혼이 주린 것입니다. 밥만 못 먹은 것 아니라 사랑을 못 먹은 것입니다. 있어야 할 엄마가 왜 없습니까? 누가 뺏아 갔습니까? 돈이 뺏아간 것입니다. 간난은 이들에게서 밥을 뺏은 것만 아니라 사랑을 뺏았습니다. 몸은 밥이 있어야 자라지만, 혼은 사랑이 있어야 자랍니다. 자라지 못한 몸은 병신이 될 뿐이지만, 자라지 못한 혼은 사회를 망칩니다. ‘보고 싶네’ ‘보고 싶네’ 영원히 영원히 ‘보고 싶네.’ 영원히 보고 싶건만 영원히 못 만나는 엄마! 여기 주린 혼의 벌린 입이 온 세상이라도 삼켜버리려 냉랭한 동굴처럼 벌리고 있습니다. 또 뭐라지요? ‘아가가 자꾸만 울어서.’ 어린 동생의 우는 울음이 이 애의 혼을 뒤흔든 것입니다. ‘자꾸만 울어서’ 할 때 저는 벌써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어린 아기는 그저 먹고 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기는 자꾸만 웁니다. 먹을 젖도 없고, 자야 할 품도 없어서, 잘사는 집 애들이 비단에 싸여 요람 속에 평화의 꿈을 꾸고 있는데, 이것은 자꾸만 울어야 합니다. 그 앞에는 베토벤이 와도, 모차르트가 와도, 바하, 헨델이 와도 소용없습니다. 다만, 엄마가 와야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못 옵니다.” 

함석헌의 시는 마치 이 아이의 간절함 같이 그런 시다. 배가 고프고 사랑이 고픈 절절함을 읊는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가만히 안락의자에 앉아서 편안한 맘으로 읽게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함께 찾고 절규하는 자세로 자꾸 몸을 사리게 만든다. 이렇게 하여 함석헌은 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길을 막을 수 없어서 <3천만 앞에 또 한 번 부르짖는 말씀>을 내뱉는다. 

또 하나 다른 굉장한 시는 1970년 11월 13일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구호를 몸에 감고 온 몸에 기름을 부어 분신한 전태일 씨의 죽음이다. 함석헌은 그것을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에 신문 한 구석에 난 기사를 보고 오래도록 잠을 자지 못한다. 전태일이 온 몸으로 쓴 그 시에 그는 감전되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뒤 귀국하여 벌인 일이 전태일을 추모하는 것과 “같이살기 운동을 일으키자”는 글을 발표하면서 같이살기운동을 벌인 것이었다. 이 두 시는 그 동안 치열하게 살아오던 그를 또 다른 차원의 삶으로 불사르게 한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시를 쓰는 것이나 읽는 것은 안팎의 감동 즉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 있다. 그가 시를 썼던 시절은 우리 현대사에서 아주 절박한 시절이었다. 조국의 해방공간과 분단시절에 온통 사회가 불도가니 속에서 들끓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그의 시어들은 결코 절박한 시절에 나올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투쟁, 혁명, 싸움, 처벌, 깃발, 조국, 민족, 건설 따위의 혁명언어들이나 시대의 언어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다른 어떤 혁명시와 같이 구호적이거나 전투적이지가 않고 그것들이 주제어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읽기가 편하지가 않다. 왜 그러할까? 바로 이 어린아이의 절규같은 그 고픔이 절절하여서, 전태일의 그 답답함이 자기 몸을 불살라 밝혀야 하는 것같은 그 아픔을, 그 간절함을 추체험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도 함석헌의 시 쓰는 자세는 매우 치열하여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시인들이 다 치열한 아픔을 거쳐서 한 편의 시를 남기겠지만, 어느 누구도 잠 못 이루는 밤을 하루 이틀 지나서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밤과 낮을 지난 뒤에라야 한 편의 시가 나오게 하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아주 무섭다. 보라 얼마나 무서운 시 짓는 자세인가? 

시를 짓기 위하여 로마 성에 불을 지른 네로는 위대하였다 할 수 있다. 저는 일편의 사상을 얻기 위하야 물질의 전 세계를 아껴하지 않았다.

사상이란 무엇이냐
생의 꽃인가
세계의 음미인가
심판인가
우주적 향락인가
절정의 조망인가
갱신(更新)인가
부활(復活)인가
초약(超躍)인가
생산(生産)인가? 

그러니까 그에게는 시를 쓰는 것은 자기의 존재와 바꾸는 일이며, 이 세상과 맞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시를 쓰는 것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다. 시 한 편을 쓰기 위하여 로마 성을 불사르는 네로를 누가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 지나면 전혀 다른 세계를 헤매게 될 그 어린 아이가 쓰는 죽음의 시나 영원히 타오르는 몸의 불길을 끄지 못하게 하는 그 외침을 그 당사자인들 이해할 것인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시를 짓는 일은 시 짓는 이의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쓰는 그 사람은 아는 것일까? 그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가 나온다. 바람을 끌어오고, 달을 잡아당기며, 꽃을 꺾는다. 자기 자신도 그 뜻을 어떻게 하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렇게 비유할 때 역시 그것은 실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한다. 말로 한다. 실체가 아니라 그것은 상징이다. 작품을 만들 때는 언제나 자기가 느낀 것을 상으로 그려낸다. 그것은 상징을 통한 뜻을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가진 느낌과 일치하지 않다. 가능하면 일치시키려 하겠지만, 자신도 불만족스럽다. 그래서 참 예술가라면 감히 붓을 대지 못할 것이다. 일단 붓을 댄 사람은 그 상을 상징으로 그렇게 그렸을 뿐이다. 상징 속에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을 제한하고 감금하였을 뿐이다. 그 시는 결국 생생함의 물화요 소외다. 그래서 그도 엄격히 살피면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그 시인의 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이해자 자신의 맘이요 해석일 뿐, 시인의 것은 아니다. 즉 이해자나 해석자, 또는 읽는 이의 절절함의 또 다른 시를 짓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석헌의 시를 읽고 생각하는 것은 저자를 떠나서 우리 자신들의 씨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함석헌의 글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글과는 다르다. 철학을 하면서 철학자들이 쓰는 문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수필을 쓰면서 수필가들이 쓰는 필법을 따르지 않았고, 역사책을 쓰면서 사실에 입각하여 기술하여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동시에 시를 쓰는 자세도 잘랐다. 그를 문필가라고 하면서, 문학인들은 그를 문학의 어느 장르에 넣지 않았다. 일반 사학계에서는 그를 사학자로 보지 않았고, 철학계에서는 그를 철학자로 보지 않았으며, 문학계에서도 그 많은 시를 써서 발표하였는데도 그를 시인으로 평가하거나 분류하지도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철학계에서 그를 재평가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연구가 있고, 그를 시인으로 보려는 움직임은 지극히 더 적은 극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어느 누구의 것에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게 사람들의 맘을 움직인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온다. 그것을 우리는 그의 문체창신운동이라고 이름을 붙여 본다. 이것은 단순히 문장을 쓰는 방법과 자세를 고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문체를 만드는 것은 곧 삶을 새롭게 함을 의미하는 데까지 간단 말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그의 삶이다. 시 역시 그러하다. 그의 문체창신은 곧 새로운 문예운동이요, 새로운 문화운동이면서, 문예혁명이다. 그 혁명은 삶과 문명의 온통 다른 길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읽을 수 있는 그의 시는 시집 『수평선 너머』 한 권에 실려 있는 190여 수뿐이다. 그것은 해방 직후 쓴 몇 편과 1947년 월남한 뒤부터 6ㆍ25 전쟁을 겪은 1953년 사이에 쓴 것들뿐이다. 신의주학생사건으로 소련군의 감옥에 갇혀 있던 50일간의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썼던 시 300여 수는 1947년 월남할 때 다 잃어버렸다. 아주 탁월한 위기상황에 있을 때, 해방과 구속의 극단의 갈등과 모순 속에서 쓰여진 그 시들은 무엇을 어떻게 담고 표현하였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읽는 것들보다 더 절절함이 묻어 있는 것이 그 시편들일 것이다. 그 때 그에게는 시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 때 그에게는 사람의 뜻, 역사의 뜻, 하늘의 뜻을 온 뫔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때 그 시편들은 그냥 시가 아니었을 것이다. 온통 감옥인 그 상황에서 시를 쓴다, 시를 낳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 세상이 감옥 아니냐? 분명 감옥 아니냐? 너도 나도 으 음냉한 감방에서 배꼽줄이 떨어지지 않았느냐? 너도 나도 이 벽을 두르리며 노래해서 이날껏 살아온 것 아니냐? 너도 나도 이 담 너머 저 세계, 저 풍편에 들려온 세계, 갸륵한 우리 맘이 제 취각으로 맡아서 안 저 빛의 나라라 그리워서, 자유의 나라가 그리워서 애를 태우는 존재 아니냐? 이 가정에서 우리의 등심이 상해 그만 더 자라지를 못하고 꼽새가 되고 말지 않았느냐? 이 사회에서 그만 손발이 얼고 옴이 올라 그 곱고 튼튼하던 몸이 다 못쓰게 되고 말지 않았느냐? 이 교회에서 눈이 어둡고 날개 깃을 뽑혀 모두지 날 수가 없어지지 않았느냐? 감옥은 분명 감옥이다. 그러나 그대로 이 안에 시가 있다. 옥이기 때문에 시가 있다. 이것이 시 아니냐? 이렇게 내가 너를 생각하고 네가 나를 그리워하며 이 돌담을 돌아가는 그것이 바로 시 아니냐? 이 부자유 때문에, 이 압박 때문에, 이 질식 때문에 나오는 시 아니냐?” 이렇게 감옥에서 그이의 시는 탄생하였다.

탄생한 그 자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찍이, 이 생명의 뜻을 말하는 시가 있었다. 이 어두운 감옥 속에 비치는 불길이었다. 그는 참 뜻을 말씀하는 참 시였다. 이 우주의 아들이었다. 하나 되는 님이 이 우주의 울타리 그늘에 우는 처녀를 만나 그 속에 넣고 그 속에서 키워낸 아들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보다 더 큰 시가 어디 있느냐? 그 외에 또 시가 어디 있느냐? 누구니 누구니 하여도 다 그 붙는 불길에서 깃 끄트머리를 붙여본 것들뿐이다.”

그는 언제나 ‘춘추필법’을 원용하여 글을 썼다. 나타냄과 드러냄을 잘 조화한 글을 썼다. 한 해의 일을 한 두 가지의 사건이나 일로 표현하면서 드러나는 그것이 나타내는 숨어 있는 뜻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 뜻이 그에게는 일맥하는, 서로 구슬을 꿰어 표현할 수 있는 듯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시와 같은 감각을 가지고 쓴 모든 그의 산문들에서도 그것이 나타나지만, 간단히 읽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의 시들에서는 그것이 더욱 절실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이 1947년부터 1953년까지 우리의 역사적 현실은 참으로 복잡하고 커다란 위기상황에 있을 때였다. 한 정부의 정체가 어떠하여야 하는 문제를 넘어서, 나라가 통일되느냐 갈라지느냐 하는 문제로 매우 심각하던 때다. 급기야는 정부와 정권은 갈라지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갈라졌으며, 그것에 따라서 나라는 두 동강으로 갈라져서 꼭두각시로 전락하였다. 그것도 부족하여 서로 상대방을 말살하려는 전쟁을 치뤘다. 온 나라가 감옥이었다. 모두가 다 그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었다. 살겠다고 피난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겠다고 야단법석일 때, 참으로 시끄럽기 그지 없는 그 때 함석헌은 시를 썼다. 그런데 그의 무수히 많은 시에서는 결코 그런 복잡한 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시를 읽어서는 결코 그 당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말하면 그 당시의 상황이 구체화하여 나타나지 않는 그의 시, 그러니까 나타나지 않은 사건들 속에 들어 있는 복잡하고 답답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어떻게 살펴내는가 하는 문제다. 나타나지 않는 나타남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우리는 그러므로 여기에서 춘추필법에 들어 있는 의미, 박지원이 역경과 춘추를 들어 설명한 글쓰기의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그의 시해석의 한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선택하여 나타낸 것, 드러내지 않은 것을 통한 드러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왜 시를 썼을까?

모든 것이 다 감옥이요, 모두가 다 죄수인데, 그리워 그리워 자유가 그리워 외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에도 위로가 없고, 슬픔과 괴로움뿐이었다. 실망과 좌절뿐이었다. 해방조국에서 또 다시 새로운 의미의 해방전쟁, 독립전쟁을 하여야 하는, 그렇다고 적과 아가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아주 심각하고 힘드는 상황 속에서 사는 죄수, 감옥수가 고통을 소리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자기 탄식이면서 간절한 기다림이요 만남이요 찾음이며 위로요 환희였다. 그러나 또 막막함이었다. 그가 시집의 제목을 <수평선 너머>라고 한 데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 맘 속에서 만상을 찾고, 영원의 찰나 속에서 그대로 표현되는 님, 신, 궁극존재를 감추인 듯 만난다. 인생은 영원의 심부름꾼이면서 또 다른 영원의 심부름꾼을 만나려는 자다. 그래서 이렇게 읊는다.

건넛마을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첫닭의 울음소리
오만 년 지난 날의 동굴 속에서
홰 치고 긴 목 늘여 힘있게 외쳐
털 깊은 그 가슴을 흔들어 깨우던
그 소리인 듯이 듣고 앉는 봄 새배(새벽)
.
.
또 혹은, 내 무슨 일로 왔던고
새삼스러이 서서 의심하면서
들레는 네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밀려들고 밀려나는 사람의 떼를
거친 바다 밀물 위에 일고 꺼지는
거품인 듯이 멍하니 건너다보고 있을 때

그 때 횃불 잠깐 올리고 영원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광채 같은 것, ‘문득 나타나는 사상(思想)의 섬광’, ‘찰나 속에만 찾아다니는 영원의 나라의 심부름꾼’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자 누군가? 꽃동산을 지키는 처녀요 청년이다. 그들은 샘물, 맑은 호수, 푸른 바다, 등불, 풀무, 간절한 맘, 가벼운 바람, 사나운 폭포, 하늘 바람을 기다린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은 조국인가? 인생인가? 그런데 그 인생 그 조국이 마치 봄날 칼에 싹둑 잘려 가마솥에 던져져 끓여지는 연한 잎새처럼, 아침밥에 살며시 다가서는 데 원수를 보듯이 날아들어 후려치는 파리채에 목숨 끊기는 파리처럼, 향기에 취해 춤추며 달려들다 그물에 잡힌 나비처럼, 열심히 새벽녘 해뜨는 아침에 찬송할 때 날카롭게 날아든 총알에 ᅐᅡ르르 떨며 땅에 떨어지는 산대처럼, 긴목 빼고 노래 부를 때 독수리 같은 손에 잡혀 몸부림치며 비명하는 영계 수탉처럼, 죽을 힘 다해 일하다가 힘 없어 빌빌 거릴 때 무서운 수리채에 꺼꾸러지는 늙은 말처럼, 새끼 다 기르고 밭 다 갈아 엎은 뒤 더 이상 쓸모 없다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늙은 암소처럼 억압을 당하면서 하는 말 “나도 인생이야” 내지르는 소리. 그 소리 들으면서  

큰 건 이끌고 작은 건 업고 쪽박 손에 들고
남의 집 문간에 머뭇거리는 그 입,
얼어 터진 어린 손발에 제 몸보다 더 큰 물통 지고
나비처럼 날아 학교로 가는 제 동무를 물그럼 바라는 그 눈,
살창 속에 귀신 같은 형용을 하고 섰어
문틈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지키듯이 바라는 그 얼굴,
총 맞고 삼판선에 걸어 엎대 죽으며
가슴에 사무친 말이나 해보자는 듯 푸들푸들 떠는 입
그들은 무슨 말을 하던가?
그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는가?
문명이란 이 무거운 괴물의 무거운 사슬에 끌려가는
가다가 거꾸러지는 이 인류의 소리를 그대는 들었는가?
그대들이, 연락장(宴樂場)에서 취할 때
상아탑 꿈을 꾸고 단 위에 이론을 펼 때
티끌 속에서, 하수도 밑에서 들리는 그 소리, 나도 인생이야! 

이러한 소리는 바로 눌리고 찢기고 짤리면서 하는 소리 “나도 인생이야” 하는 것. 바로 그 소리 하나 듣자는 애타는 귀기울임 아니던가? 시에 나오는 연한 잎새, 파리, 산새, 나비, 영계 수탉, 말, 늙은 암소들은 다 눌리고 수탈당하고 노예처럼 일하고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야 하는 일반 사람들, 민중들, 지금 말로 하면 씨ᄋᆞᆯ들이 아니던가? 

무엇을 썼을까?

노장부가 되고 싶었던 것이지 않을까? 마을을 다 뒤덮는 재난이 왔을 때 그것을 이길 것이 무엇이던가? “불평도 없고, 불만도 없고, 급해도 않고, 지루해도 않고, 남이 본다면 한없이 강한 듯하면서 자기로선 아무 자랑도 없으면서, 무엇을 인해 사는 것도 없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도 없고, 그저 사는 대로 살고 자라는 대로 자라 하늘을 우러르고 서 있”는 ‘썩어지는 큰 나무’를 함석헌은 바라지 않았던가? 그것이 노장부였다. 그래서 함석헌은 이렇게 노래한다. 

“밤이 갈수록 놀은 더 일고 함락하려는 외로운 성을 향하여 총돌격을 하는 군대처럼 폭풍우는 노목이 서 있는 골짜기 복판을 향하여 비바람을 묶어 박았다.

바람은 더욱 사납고 뇌성벽력은 더욱 노하고 인간에서라면 닭이 거의 울게 되는 때에 마지막 순간을 점점 가까워 무슨 일이 나고야 말 듯한 절박감이 골 안을 꽉 눌렀다.

노장부는 전신을 떨고 부르짖음을 발하였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드디어 임하는 큰 사명의 계시를 받으려는 순간의 긴장에서 나오는 진동이요 부르짖음이었다.

그 소리라야 무서움도 아니요, 노함도 아니요, 분도 아니요, 원망도 아니다. 슬픈 노래라 할 수도 없고, 기쁜 외침이라 할 수도 없고, 고민의 소린 듯하면서도 아니요, 싸움의 함성 같으면서도 아니다.

형용할 수 없는, 그대로 가만히 있어 듣고 있을 수 없는 소리가 바위 속에서 울어 나오는 듯 지심(地心)에서 솟아 나오는 듯 터져 나오고 밀려 나오는 그 소리였다.

우우, 으으, 와와, 으흐흐흐, 우허어, 어허어
호소하는 듯, 탄원하는 듯, 절규하는 듯, 전신의 세포가 떠는 소리였다.” 

그 나무는 속까지 다 썩었다. 겸손한 자의 상징이요, 맘이 가난한 자의 상징이었다. 완전히 죽어 아낌없이 주는 자의 상징이었다. 그것이 바로 빈 산에 썩는 거목이다. 그 나무는 어디에 서 있었을까? 생명의 동산에서 그렇게 썩어갔다. 역사의 들판은 바로 씨ᄋᆞᆯ의 시체로 깔려 있었다. 거기에서 천만고의 태고부터 들려오는 소리, 생명의 신비였다. 거룩한 썩음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주장한다. 외친다. 보짱이 되고 기둥이 되기 보자는 썩어버리자고 한다. “하룻밤 어리석은 아해들의 싸움 끝에 이는 불길에 타 연기로 사라지기보다는 이 골짜기에서 썩어져 저 어린 것들을 살찌우자! 거름이 되자! 풀어지자! 생명의 바라로 돌아가자! 썩자, 동량의 재목아! 썩자, 우대한 혼아! 썩자, 가만히 누워 썩자, 풀 속ᅅᅥ 땅 밑에서 겸손하게 용감하게 썩자! 썩어 사라지지, 남 모르게 사라지자!” 

그렇게 하여 무엇이 되자는 것인가? 한 얼굴 되자는 것, 한 얼굴 바라보는 얼굴 되자는 것이지 않던가? 어떤 얼굴일까?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
얼굴 하나 보러 왔지
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
우리 삶이지
시간의 끝없는 물결
들고 또 나는
영원의 바닷가에
한없는 모래밭에
오르며 또 내리며
헤매어 다니면서
진주 한 알 얻어 들잠이
우리들의 삶이지(얼굴, 115-6) 

그래서 산 얼굴, 부활의 얼굴, 새 생명의 얼굴 하나 찾아 바닷가를 서성인다.
그래서 다시 이어서 시인은 읊는다. 

땅 위에 산 얼굴 찾아
헤매이던 내 눈
피곤에 흐리어 푸른 하늘 바라고
그 님의 그 얼굴 내 맘에 그리면
그리다 그리다 못해
내 눈에 눈물 어리는 때면

그 영광의 얼굴, 그 거룩하게 산 얼굴
내 눈물 속에 영롱하게 뵈고
그 광채 내 얼굴 비쳐
내 얼굴 타올라 빛나는 듯하고
내 마음 시원하고
이 좁은 세상 넓어지고 높아지며
저 멀리 저 무한한
저 영원한 가 쪽에 가슴 벌려 서고
그 안의 모든 형상들 모든 얼굴들
밤하늘에 별처럼
달빛에 보는 들처럼
그 풀잎새 그 가지 그 이슬
또 저녁 바다 넘는 햇빛에 바라는 섬처럼
그 바위, 그 모래, 그 조개껍질, 그 부서진 배 조각,
한 빛에 들어 그대로 다 아름답듯이
그대로 다 빛나 좋으네! 

그 얼굴 그리워, 아아,
그 님의 그 얼굴 늘 바라고 늘 그리며
눈물로 사라지는 슬픔에 씻긴 맑은 눈으로
눈물에 사라지는 세상 얼굴들 바라보고,
늘 기쁨에 늘 찬송에 늘 사랑에 살고 싶으네
늘 그리움에, 늘 영광에 살고 싶으네
이 바닷가 걷고 싶으네 

그래서 인생은 어부였던가? 고기 한 마리 낚자는 어부였던가? 그 어부는 영원의 바닷가에서 영원의 산 고기 한 마리 낚기 위하여 서성이는 것인가? 

수평선 너머

그런데 인생의 바다, 역사의 바다를 바라보면 늘 출렁임뿐이다. 생활이라는 바다, 사회라는 바다, 함께 살아가는 정치라는 바다를 늘 바라보면 넘실거리는 것뿐이다. 풍랑이 있을 뿐이다. 바람-바람-바람-또 바람, 물결-물결-물결-또 물결. 이러한 곳에서 ‘하늘을 삿갓’으로 삼고, ‘바람을 옷’으로 삼아 풍랑의 바다 위에 까불리우는 조각배 위에 “동무여, 너는 나를 안고 나는 너를 안고, 비바람이 치거든 믿음으로 참으리로다/ 물결이 닥쳐오거든 사랑으로 안고 넘으리로다/ 어느 때나 쉬지 않고 영원한 하늘 바람에 노래하며 가리로다”

이렇게 가겠다고 하지만, 사실 있는 것은 끊임없는 풍랑과 미친 물결의 아우성, 노한 거품, 캄캄한 비 우박의 쏟아짐, 일렁이는 소용돌이뿐이다.

 

멀리서 남 보기엔 늘 아름다운 꿈에 잠가는 듯해도

늘 물결 이는 바다

늘 출렁거리는 바다

늘 끓는, 늘 빠져드는, 늘 떨리는 풍랑의 바다

세상 바람 불고 갈 때마다 일어나는 물결,

바람결만도 못한 말결마다 제 몸을 걷잡지 못하는

물결보다도 더 약한 마음의 결

조각구름 흘러갈 때마다 낯빛 변하는 바다

구름보다도 더 빨리 지나가는 얼굴 보고 미치고 놀라는

제 빛 잘 잊어버리는 내 맘의 낯빛

늘 흔들려

늘 휘몰려 돌아가

늘 평안 잃고 우네, 겁내네, 헤매이네

바람 따라 이는 물결 그러나 안 무서워

바람은 불다가도 자는 바람,

바람 자는 밤 물결 제 아니 자오리

구름 따라 변하는 물빛 그도 걱정은 없어

구름은 흐리다도 개이는 구름

구름 날리는 날 물빛 제 아니 맑으오리(영원의 뱃길)

 

이렇게 보이는 물결과 풍랑과 구름과 바람은 무섭지가 않아. 잠잠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보이지 않는 그것들이 힘이 들어. 이것이 실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이어러 읊는다.

 

바람도 없이 이는 물결

제 스스로 일어나는 이 의지(意志)의 물결

구름도 아니고 물드는 바다

제 스스로 물이 드는 이 감정의 바다

텅 빈 하늘인 듯 이지(理知)는 차게 맑건만

그 물결 그 어둠을 어떻게는 못하는 이 내 맘

무서워 아아, 무서워

나는 내 맘 앞에 엎더지노라 기절하노라

밤중의 고요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 없는 물결은 그 무슨 물결인가?

보석을 쥐어 뿌린 듯한 찬란한 별의 새벽 하늘에

구름 없이 흐리는 어둠은 그 무슨 어둠인가?

가슴의 밑바닥에서 비꼬여 오르는 이 풍랑

이 정체 알 수 없는 무서운 풍랑

그대는 이 풍랑 겪어 본 일 없던가?

성인(聖人)들이여, 그대들은 그런 일 없던가?(영원의 뱃길)

 

이것은 인간의 원죄다. 처음부터 있는 죄 때문이다. 이것은 끊임없이 살아 일어나서 바닷가 물결처럼 바람처럼 인생과 역사를 괴롭힌다. 그래서 다시 시인은 읊는다.

 

너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네 허울을 안으리라

빈 맘 속에 안은 담에야 네 쏘는 살이 어딜 쏠 거냐?

 

동무여 이리 오라, 오라!

인생의 지중해 풍랑 무서워

언덕에 움츠리려는 동무여

밤 바다 폭풍우 진저리 떨려

구렁에 잠자려는 동무여

오라!

떨지 말고 졸지 말고 오라!

푸른 물결 늠실거리는 이 바다로 오라

고함쳐 부르는 이 영원의 바다로 오라

거품 물고 헐떡이며 달려드는 저 물결

거푸거푸 부르러 보내시는 님의 사자 아닌가?

오라!(영원의 뱃길 380쪽)

 

마지막 말, ‘거푸거푸 부르러 보내시는 님의 사자 아닌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그 끝없는 파도, 바람, 물결, 일렁임과 두려움을 주는 그것들이 바로 나를 거푸 불러대는 사자란 것, 이것이 얼마나 거룩한 복음인가? 그래서 시인은 우리를 일렁이는 바닷가로 초청한다. 일렁이는 초청의 짓들을 너머 우리를 부르는 그 세계를 그린다. 그래서 다시 부른다.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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