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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증언-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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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보새 작성일17-05-21 09:43 조회232회 댓글0건

본문

세기의 증언-서문
 
 
달아 붙이는 말
몇 해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내가 한번 달아 볼까? 이날까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만 하면 될 줄을 아는 쥐는 많아도, 또 그렇게 하자는 데 찬성한 쥐는 많아도, 실지로 어떻게 하면 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쥐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쥐가, 쥐만 아니라 모든 사람도 그「어떻게」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을 뚫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생각을 말고, 내 목에다 방울을 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양이 앞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양이는 나를 먹을 터이요. 방울은 고양이 목에가 아니라 바로 뱃속에 있을 터이니, 그 놈이 어디를 가거나 언제 움직이거나 우리는 늘 틀림없이 그 소리를 듣고 알 터이요. 그러면 쥐의 나라는 구원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쥐와 사람이「어떻게」라는 방법론에 걸려 꼼짝 못하고 빤히 알면서도 죽는 것은 제 목숨 하나 때문입니다. 제 목숨은 다치지 않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니 영 달 길이 없습니다. 사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것도 나 하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죽이면서 고양이 뱃속에 방울을 넣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나 하나가 죽는 대신 쥐나라는 틀림없이 구원이 될 것을 다 잘 알건만 아무도 그것을 과연 옳은 방법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이래서 맹자는
不爲也언정 邦不能이라
했습니다. 정말 제 목에 방울을 달고 고양이 앞으로 나간 쥐가 없지 않습니다. ‘예수’도 그 거요, ‘간디’도 그거요 ‘마틴 루터 킹’도 그겁니다‘
비폭력반항이란 제 목에 방울을 달고 악이라는 고양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방법 아닌 방법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양이 앞에서 한 놈씩 한 놈씩 모조리 잡혀 먹히우는 쥐 나라입니다. 어느 순간에 가서는 나도 그 차례에 들 것을 알며,「저놈의 목에 방울을 달기만 하면, 그 오는 것을 미리 알고 도망할 수가 있으련만」하는 깜찍하면서도 어리석은 쥐가 우리입니다. 악은 꾀로도, 지식으로도, 힘으로도 이길 수 없습니다. 자기희생으로 하는 사랑의 반항이 있을 뿐입니다.
 
책머리에 유명한 사람의 서문을 줄렁줄렁 가져다 붙이는 책 중에, 쓸만한 책 없습니다. 나는 글을 써도 어느 유명한 사람더러 서문 써 달랄 맘 없고, 나 자신이 유명한 사람도 못되지만, 그런 청에 응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목에 방울을 달고 고양이 앞으로 가는 쥐의 방울 소리기에 나도 그 뒤를 따르는 맘씨로 두어 자 써서 붙이는 것입니다.
모든 쥐가 다 제 목에 방울을 달고 달려든다면, 고양이 아니라 호랑이라도 질겁을 해 달아나지 않을까요?
1964.7.9
 
세기의 증언-서문
저작집30; 없음
전집2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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